남의 일을 봐 주고 먹고 사는 업을 한다면 그 중에서도 최고가 ‘을’ 일테고 그 아래 ‘병’, ‘정’이 있을 것이다. 생각해 보면 절대 ‘갑’은 매우 극소수고 대다수는 ‘을’ 이하가 아닐까 싶다.
작은 회사를 10년 넘게 하면서 철 없는 짓을 많이도 했다. 우리가 열심히만 잘(?)하면 고객사로부터 무한 인정을 받고 쉽게 성공하는 줄 알았던 20대 사장이었던 적도 있었고 한국에서는 역시 인맥, 학맥이 없으면 큰 프로젝트 근처에 가는 것은 힘들구나를 절감한 30대 사장을 지나 이제 40대 중반에 묘한 ‘정치적 힘’을 느낀다.
컨설팅, 에이전시를 하며 < 양심> 이란 것을 만들었다. 스스로의 다짐 같은 것이다. 고객이 몰라서 잘 못된 선택을 하면 설령, 그 선택으로 우리 마진이 높아지고 일이 더 쉬워지더라도 고객의 예상되는 손실과 불편에 대해 정확히 지적하고 잡아 주는 것이 < 양심>이었다. 나름 매우 고집스럽게 지켜왔고 합리적이라 생각했다.
불혹 중반의 지금은?
그 원칙을 버렸다.(버릴려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. 침묵의 횟수가 많아진다.)
왜?
힘들었냐고? 그렇지 않다!
쉽게 돈 벌기 위함이냐고? 그렇지 않다!
두 가지 이유다.
첫째, 클라이언트 내부 정치적 문제.
둘째, 사장 때문에 죽어나는 직원들에게 미안해서다.(그들도 나이를 먹고 있다.)
클라이언트가 원하는대로 진행한다. 우려했던대로 KPI는 만족스럽지 못하다. 그러나 담당자와 책임자는 기뻐한다.(아마도 사장은 이 수치가 무엇인지 모른 것 같다. 알았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.) 성공적이라 평가 한다. 재 계약이 높아진다. 즉, 내 원칙(양심)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. 그래서 더 버릴려고 노력 중이다.
반대로 원칙을 지킬려고 노력하면 클라이언트 누군가는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긴다. 어떤 것이 옳은 방법일까? 흥미로운 것은 그 때 힘들어 했던 담당자가 다른 조직으로 옮긴 후 다시 연락이 오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점이다. (다시 연락 오는 기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.)
에이전시의 원칙과 탁월한 능력 사이에 묘한 함수가 존재한다. 옳고 그름은 없는 것 같다. 내 아이가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이런 정치적 힘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는 재미있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. 지금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만약 우리 회사가 지금보다 더 많은 자본은 축적했다면(가진 것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) 다수의 프로젝트 제안은 리젝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.
덧붙이자면 자수성가한 CEO의 경우 원칙에 의한 진행을 선호했고 대기업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경우가 더 많다.
본인 주머니로 직접 결재하는 자수성가형의 CEO와의 계약과 프로젝트 진행은 더 까다롭고 체력 소모가 심하다. 주주의 돈으로 운영되는 곳일수록 후자에 가깝고 진행은 더 효율적이었다. 물론 프로세스가 복잡하긴 하지만 투자 효율은 충분하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