‘우아한 가난’
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에게 당당하란 얘기. 어제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공무원인 친구가 여의도에 전망 좋은 아파트를 무리해서 구입 후 지금은 깡통 아파트가 되어 이혼 위기에 처했단 얘길 들었다. 그 아파트를 장만 했을 때 분명 그의 부인도 남편이 자랑스러워 친정이며 친구들에게 자랑했을 것이다. 남편이 곤궁해지자 이혼이라는 현실을 택한 것이다. 아주 이기적인 생각이다.
이 작가는 그런 상황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라 말하고 있다. 독일의 몰락한 귀족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그의 아내는 바가지 대신 그가 좋아 하는 수프를 대접했다고. 참 따뜻한 삶이다.
어제 그 페이스북 친구는 또 이런 글도 올렸다.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 다수가 허세고 그 허세를 시기하고 부러워한 마음을 감추고 좋아요를 누른다고. 정말 그럴까?
그런 삶을 지향한다는 바램의 표출일 수도 있고 정말 축하해 준 마음일 수도 있다. 하지만 통계에는 그 페친의 말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.
만약 공개 타임라인에 자신을 더 투명하게 던진다면 마음이 더 편해지지 않을까? 왜, 현실을 숨기고 난처함을 감추고 폼 잡을려고 할까!
이번 주말 전에 나는 나의 어려움과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. 상대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 판단했다. 관점의 차이일지 모르나 나는 내 자신한테 투명한 것이 편하다. 폼 잡는 것은 맞질않는다.
여기 작가는 그것을 자신만의 ‘규율’이라 표현했다. 공감한다. 내 생활이 왜 다른 대표들과 비교해 단조롭지? 하는 문제로 한 때 심각하게 고민했다. 골프를 하지 않는다. 룸접대를 싫어한다. 왜 앞뒤가 막혔냐한다. 나는 나와 맞지 않는 환경에 혼란스러운 행동이 싫기 때문이지 로비와 접대하는 그들을 비난하진 않는다. 오히려 그들이 나를 이상하게 본다.
주말에 많은 생각을 한다.
지금 내 자리는 내가 있을 곳인가?
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은 내가 더 선명하게 만들어 정리하는 것이 현명하다. 삶의 방식과 판단기준, 표현방법은 각자의 것을 존중해줘야 한다. 우아한 가난? 청빈으로 알고 있는 그것을 얘기함이겠지. 청빈낙도가 과거의 행동규율만은 아닐 것이다. 큰 것을 한 방에 먹은 사람도 중간 중간에는 소소한 삶의 행복으로 동력을 유지했을 것이다. 그래도 우리는 오늘 밥 먹고 해빛을 쪼이고 있지 않은가?
당신, 행복하신가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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